네타냐후 '대법원 권한 축소 법안', 美 유태인도 반대 시위
허길상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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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0 09:08 | 최종 수정 2023.03.1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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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 랍비인 샤론 브라우스는 지난달 말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나고그(유대교 성전)에서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정부는 극우 민족주의 정권이다"라고 설교했다.
워싱턴DC 정계의 최대 로비스트 단체인 ‘북미유대인연합’은 네타냐후 총리를 향해 "대법원 권한 축소 관련 법안을 철회하라"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보냈다. 보수 성향의 이 단체는 매년 30억 달러를 투입해 미 정계에 친(親) 이스라엘 로비를 벌인다.
미국에 거주하는 유태인 대다수는 팔레스타인 문제 등 민감한 사안에서 이스라엘 이익을 일방적으로 지지해왔다. 특히 랍비, 억만장자, 정치 로비단체 등은 친 이스라엘 성향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최근 이들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뉴욕타임스(NYT)는 8일(현지시간) "미국 유대인 사회 전반에 네타냐후 정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급증하고 있다"면서 "일부 영향력 있는 단체와 인물들은 조 바이든 행정부에 ‘네타냐후 정권을 규탄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유대인 사회가 네타냐후에 반감을 갖게 된 이유는 현재 이스라엘 극우 연정이 추진하는 사법부 무력화 법안 때문이다. 이 법안은 이스라엘의 연성헌법인 ‘기본법’에 반하는 의회의 입법을 대법원이 사법심사를 통해 막지 못하도록 하고, 여당이 법관 인사를 담당하는 위원회를 조종할 수 있도록 했다.
이스라엘에서는 네타냐후 연립내각이 의회에 대법원 권한 축소 법안을 제출한 지난달 이후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반대시위가 한 달 이상 이어지고 있다.
NYT는 "미국의 유대인들은 비리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앞둔 네타냐후 개인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악법이라고 공통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도 지난 5일 신문 칼럼을 통해 "건국 이래 지속해온 이스라엘 민주주의가 백척간두에 놓였다"고 썼다. 유대계 억만장자인 그는 이스라엘 역대 정부를 단 한 번도 비판한 적이 없다.
'자유주의 유대인 민주위원회' 할리 소이퍼 위원장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네타냐후 정권의 법안은 이스라엘 행정부 자체의 합법성과 민주주의 정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NYT는 “유대인 행동주의 단체들은 바이든 행정부에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를 지켜달라’는 청원을 수도 없이 넣고 있다”면서 “‘대법원 무력화는 미국과의 관계 단절’이라 주장하는 유대인들도 존재한다”고 전했다.
북미유대인연합은 로비 자금을 동원해 민주·공화당 의원들에게 네타냐후 정권 규탄을 압박하고 있다.
최근 민주당 하원의원 80여명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모든 외교적 수단을 동원해 해당 법안 입법을 막아야 한다”는 청원서를 보낸 것도 이 단체 로비에 의한 것이다.
다만 소수의 극우 성향 유대인들은 여전히 "임명된 공직에 불과한 대법관들이 선출된 권력인 총리를 탄핵해선 안 된다"는 네타냐후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시위대가 나라를 무정부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면서 "이스라엘인 다수가 선거를 통해 결정한 것을 뒤집고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를 망치는 것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야권 지도자인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이에 대해 "네타냐후는 사법 개혁 계획에 관한 대화를 한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로마로 갔다"고 비판했다.
오스틴 장관도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는 모두 공고한 기관 간의 견제와 균형 그리고 독립적인 사법부 위에 건설되어 있다"며 네타냐후 정부의 사법부 무력화를 겨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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