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룡 칼럼] 리비아 대홍수에게로 세월호를 보낸다

'집에 있으라'에게로 '가만 있으라'를 보낸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인간 사이의 갈라진 벽과 같아서..."

칼럼니스트 정하룡 승인 2023.09.17 07:00 | 최종 수정 2023.09.26 10:13 의견 0

어둔 하늘에 빛이 번쩍이고 천둥소리 으르렁거리고 쏟아지는 빗소리 사납다. 2023년9월17일, '헤아려본 슬픔', '헤어질 결심'... 같은 '말'들이 지나가는 이른 새북이다.

일주일 전, 한반도 지구 저편에서도 이랬을까싶다. 물벼락..물난리..그리고 숨막힘.. 숨거둠...하염없이 떠내려가는 목숨들... 인류의 지구생활에 이토록 같은 불행이 시간차를 두고 반복, 벌어지는 이유는 뭘까?

2023년9월17일 아침, 한반도 남쪽 어느 변방에서 아침을 맞다/사진=정하룡


지난 10일(현지시간) '리비아 대홍수' 발생 후 사망자 실종자수가 2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뉴스와 함께 당국의 적절한 기상예보와 사전 대피령이 제대로 내려졌다면 피해를 줄였을 거라는 '책임과 원망'의 공방이 불거지고 있다.

페테리 탈라스 세계기상기구(WMO) 사무총장은 14일 스위스 제네바 사무소에서 기자들에게 "리비아의 기상 서비스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경고를 발령할 수 있었을 것이고, 비상 당국이 대피령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세계기상기구는 홍수 발생 72시간 전에 모든 정부 당국에 이메일과 언론을 통해 이번 참사를 일으킨 사이클론 다니엘의 위력을 알렸다"고 강조했다.

영국 BBC 방송은 현지 당국이 사람들에게 대피 명령을 내렸는지, 내렸다면 언제 내렸는지 등을 두고 상반된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BBC는 리비아의 동서로 분단된 두 정부가 '같은 홍수'에 서로 '다른 대응'을 보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리비아 카다피 정권이 2011년 북아프리카와 아랍에 불어온 '자스민 향기'로 무너진 이후, 동부 리비아 국민군(LNA)과 서부 트리폴리 통합정부(GNU)로 갈라져 지금까지 대립하고 있는 상태다.

리비아 태그히어당 대표 구마 엘-가마티는 홍수 피해 지역의 주민들이 "'가만히 집 안에 있어라, 나가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LNA 측 관계자들이 지난 10일 밤 TV에 출연해 기상악화를 이유로 주민들에게 '집에 머무르라'고 지시했다"고 14일 주장했다.

하지만 LNA 측 대변인 오스만 압둘 잘릴은 군인들이 주민들에게 대피하라고 경고했으며 집에 있으라고 지시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동부 항구도시 '데르나'의 압둘메남 알가이티 시장도 아랍 매체 알하다스와의 인터뷰에서 "재난 발생 3~4일 전에 대피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가디언지는 리비아 동부를 관할하는 리비아국민군(LNA) 관리들이 홍수 당일 밤 TV방송을 통해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리지 않고 통금시간에 맞춰 집에 가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CNN은 국가(?)가 '머물라, 떠나라'하는 사이에, 국민(?)이 '이럴까, 저럴까'하는 사이에 "데르나 댐 두 개가 붕괴한 지 90여분 만에 거센 물살이 도시의 20% 전체를 휩쓸었고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한편 동서로 갈라진 리비아 '행정시스템'의 오작동도 문제지만, 무너진 '댐 시설' 자체가 문제였다라는 지적도 있다.

가디언지는 "튀르키예 기업, '아르셀Arsel'이 2007년 댐의 유지보수를 위해 리비아 당국과 계약했지만, 2011년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자 떠나버렸다"고 설명했다.


여기까지가 한반도의 지구 저편, 오늘 일어난 '리비아 대홍수' 대략의 '헤아려본 슬픔'이다. 다음은 "가만 있으라"해서 가만 있다가 모두 사라졌다는 21세기 기막힌 전설...'헤어질 결심'에 관한 이야기다.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에서 인천항과 제주항을 오가는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 침몰해 승객 476명 중 304명이 사망, 실종됐다.

그때도 대한민국 박근혜 정부의 행정시스템의 오작동과 그때 그 시간 당신은 어디서 뭘 했냐는 '집권자의 자격' 문제와... 또 20년 수명의 여객선을 30년 연장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한 이명박 정부 등과의 '책임 공방'이 지금의 '리비아 대홍수'와 정확히 오버랩된다.

배 안에 전기가 꺼지고 공기압이 터져 물기둥이 솟아오르는 순간까지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 지시를 믿고 따랐던 어린 생명들은 수장됐다.
"가만히 있으라"는 곧 국민 주권 국가 시스템 오작동으로부터 '헤어질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게 나라냐?"라는 상징으로 번졌다.

여기까지가 한반도 남쪽, 대한민국 '세월호'라는 조그만 상징에 새겨진 '뼈아픈 기억'들이다.

한반도 남쪽 변방에서 새벽 천둥번개소나기를 맞는 지금, 지난 세월호로부터 '헤어질 결심'을 한 후 10년이 지난 지금, 꼭같은 세월호가 꼭같이 흔들리고 있다는 게 필자의 예감이다.

리비아에서도, 대한민국에서도 더 늦기 전에 '헤아려본 슬픔'을 헤아려볼 때다. '헤어질 결심'과 헤어질 때다.

저작권자 ⓒ Eurasian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